얻은 것과 잃은 것

Essay
Published

December 20, 2023

상근예비역은 나에겐 정말 큰 기회였다. 군 생활 동안 자잘한 자격증 7개를 따고, 30권이 넘는 책을 읽고, 결과물은 없지만 개발을 해보자고 발버둥 쳐봤다.

그래도 그 짧은 군 생활동안 나름대로 수련했다고 학교로 돌아가기 너무 싫었다. 너무 경험이 고팠다. 그래서 나는 전역 직후 회사를 다니는 선택을 했다. 배우고 갈고닦았으니 써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짧아도 경험은 경험이라고 사회생활을 끝내고 학교에 돌아가니 나는 많은 것을 겪어온 선배가 되어있더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름의 목표도 생겼고,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하니 학교 공부만 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수업은 재미없었고, 속도도 느리다고 생각했고, 치열하지 않았고, 고리타분했다. 배움이 비효율적인데 배움 그 자체의 절대량도 부족했다. 비대면이었던 것도 한몫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행동은 캠퍼스가 지루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캠퍼스 밖의 별천지를 잠깐 맛보고 돌아온 나는 학교 수업과 시험을 졸업장을 수여하기 위한 행정적 절차 정도로 여겼다. ’내키지 않지만 해야 하는 행정절차’였다. 이사를 하기 위해선 동사무소에 입주 확정일자를 받고, 이사 후 전입신고를 마쳐야 하는 것처럼.

전에 다닌 회사에서 한 AI researcher님이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학교 수업 미적분학, 수리통계학 이런 거 시험 치고 까먹어버리는 그런 과목들 있죠. 그거 사실 그때만 그렇게 공부할 수 있어요. AI, 난 추천하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 뭐 관심 있으면 그런 거 잘 들어두세요. 다들 그렇게 공부하는데, 사실 나이 들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발 동동 구르면서 공부하게 되진 않거든요. 그렇게 공부하고 쿨하게 다 까먹는 거예요.

졸업을 할 때가 되어 뒤를 돌아보니, 난 그저 내가 얻은 것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어진 그 순간 집중해서 학문적 시행착오를 겪고,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하지 않으려고 했다. 재미도 없고, 나중에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해야 하는 공부를 어찌 보면 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렸고, 미뤘고, 결국 무늬만 공부한 채로 치워버리고 말았다.

나는 학문을 잃었다. 캠퍼스 밖의 사회생활을 통해 나름 배운 게 있었고, 경험도 했고, 시야도 넓어졌다고 하지만, 캠퍼스 내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했다.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다. 아마 언젠가 이 대가를 치르지 않을까, 이미 치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 깨달음을 기록하고, 스쳐 지나가는 다짐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캠퍼스 밖의 경험을 강조하던 배움이 부족한 선배였던 내가, 후배들에게 더 이상 허튼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


그래서 너는 불성실한 학생이었냐… 학점을 조졌냐… 그렇게 파고 들어가면 반반이다. 그냥 지나가는 학생 1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