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 night
실리콘 밸리는 기회의 땅이다. 특히 인재의 산실인 스탠포드와 버클리는 이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기회의 극단을 달리는 곳이다. 스탠포드 학생이라면, 버클리 학생이라면, 손 닿는 거리의 선배에게 연락해서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고, 옆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엄청난 아이디어를 들고와서 거대한 사업을 일굴 수도 있다. Cal grad, Cal Alumni라는 단어만 붙어도 기꺼이 시간을 내주는 generous한 선배들이 즐비하다.
오늘은 프로그램을 떠나, 여기 실리콘밸리가 왜 기회의 땅인지, 캠퍼스 안팎의 경험을 써보려고 한다.
(교환학생들이 엄청 잘 다니는 여행, 그런건 나한텐 잘 없다. ㅋㅋ)
Show Me the Money
학교가 돈이 많은지 보려면 도서관이랑 경영대 건물을 보면 된다 카더라…
여긴 돈이 진짜 많다. 여기저기 돈이 없으면 설명이 안되는 환경이 굉장히 많다. 밀리언 달러 규모 시드펀딩 이야기는 한 다리만 건너도 들을 수 있다. 버클리 메일을 달고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너무 많다. 각종 아카데믹 저널, 초고가 금융 데이터 베이스, 돈 내고 봐야하는 뉴스들(wsj, NY Times 등), 스타트업 단계마다 제공되는 엑셀레이팅 프로그램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처음에는 다 누려보려고 했는데, 진짜 필요한 것만 찾아서 해도 충분히 과분한 환경이다.
이 링크는 버클리 도서관이 제공하는 데이터 베이스 목록을 볼 수 있는 사이트인데, 아름답다. 데이터 베이스가 1400개가 넘어간다.
https://guides.lib.berkeley.edu/az.php
버클리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부 열람이 가능하다.
어지간한 책들은 버클리 도서관에 검색하면 pdf로 다운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꽤 있다. 미국에선 저자들이 pdf를 그냥 무료로 뿌려버리는 경우도 꽤 있어서, 학교 수업 교재는 도서관에 일단 검색부터 해본다. 동물 표지로 유명한 O’Reilly에서 제공하는 책들은 버클리 메일로 전부 열람이 가능하다. (책 전부 다!)
일부 캡쳐한게 이 정도…
이 링크는 버클리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스타트업 리소스 전체를 리스트업 한 사이트다. 창업에 관심은 있으나 팀과 아이디어가 없는 학생부터 달려나갈 준비를 하는 유망 스타트업까지 모든 단계마다 멘토링 프로그램, 엑셀레이팅 프로그랭 등등이 준비되어 있다. 펀딩에 competition, 학교 club까지 리소스가 그야말로 무한하다. 당연히 전부 지원해서 참여 할 수는 없고, 각자 적절히 상황이 허락하는 선에서 이것저것 해보는 것 같았다.
Earth and Science 도서관이었나 그랬다.
이 외에도 참가한 프로그램에서 심심찮게 이런 행사 저런 행사 참가 메일이 날아온다. 옥스포드에서 하는 세미나라던가, 테크 크런치 이벤트도 있으니 참가해봐라, 버클리 대학과 로펌이 합작해서 제공하는 스타트업 법률 세미나도 있다 등등등. 디자인 강의가 하나 있는데 아예 강의 자체 링크를 뿌려서 모든 학생이 audit 할 수 있게 오픈했다. 유명 디자인 연사들 초청해서 이것저것 듣는 그런 강의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 학비가 비싼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는 꼴이 되긴 했는데, 아무튼 여기서 이런거 돈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뭔가 하려고 하면 다 있고, 뭔가 궁금해서 찾아보면 다 있다. 여긴 그런 곳이다.
Soft Power
Engineering library
어느 곳에서 왔든 여기 실리콘 밸리에서는 자연스럽게 따르는 그들만의 문법이 있다. 이 곳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누구의 가능성도 의심하지 않는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기꺼이 기회를 열어두려 한다. 국적이 달라도, 잠시 지나가는 여행이라도, 일단 스타트업에 관련된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면 다들 어디서 세뇌라도 당한 듯 똑같은 행동을 한다. 내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아이디어를 듣고, 여기서 뭐하니, 앞으로 뭐할거니, 너 뭐 좋아하니, 너 뭐 잘하니 등등.
누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선가는 항상 보고있다.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나의 모든 행동이 자기 PR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founders night
스페인 친구들이 굉장히 어메이징하다며 다음에 같이가자 그래서 따라가본 founders night. 말 그대로 저기 서있는 한명 한명이 전부 스타트업 관계자들이다. VC도 섞여있고, 엔젤 투자자, 좋은 아이디어 찾는 개발자, 스타트업 창업자 등등등등. 진행자가 있고, pitch를 신청하면 저렇게 사람들이 둘러쌓인 곳에서 모닥불 앞에 하나 두고, 맥주 병 손에 쥐고 2분에서 5분동안 말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pitch 한다.
저기서는 다가가서 악수를 청하고, 이름 밝히고, 뭐하는지 왜 왔는지 이야기하며 LInkedIn을 공유한다. 관심이야 서로 없을 수는 있는데, 일단 열어둔다. 여기서 서로 악수한 딱 그 정도의 인연이라도 미래에 혹시 모르니까. founders night은 내가 무언가 말할 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크게 느낀 이벤트기도 했다. 한인 사업가도 두 분 만났다.
푸드 스타트업이 모임 스폰서로 참여했다.
Bay Area에는 이런 모임이 한 두개가 아니다. 여기서 모임 어플로 주로 쓰는 eventbrite에서는 아예 startup section도 따로 있고, 슬쩍 들어가봐도 정말 많다. 이런 모임의 성격은 진짜 다 다르다. founders night의 경우 대부분 아이디어 하나, 열정 하나만 있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기회를 물색하고, 자신을 알리는 그런 공간이다. 그래서 서로 이야기 듣고, 자기소개 하고, 네트워크라고 하는 뭐 그런거 넓히고 그렇다. 같이 참가한 독일 친구는 pitch는 연습이라며 자기 아이디어를 조리있게 설명하고 피드백을 듣는 공간으로 활용하더라.
버클리 캠퍼스가 좋아
수업 외적으로도 창업가들을 만난 경험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만난거라 구구절절 쓰진 못한다. 실리콘 밸리이기 때문에, 내가 학생이기 때문에 정말 너그럽게도 내 가능성을 인정해주시고 인연을 만들게 됐다. ’그런게 뭐 대수냐, 그냥 만나서 연락처 교환한 정도고 뭐 아무것도 아니지 않냐’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렇게라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일단 신기했고, 내 행동 하나하나 보게 되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정말 파보고 싶은 분야가 생기면 어쩌다 만난 누군가가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렇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원래 나는 경험에 돈을 크게 쓰는 타입이기도 해서, 좋다. 이런거 하려고 온거지.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소통하면 통하는 사회구나. 돈은 결과물이고 자신의 본능, 열정을 쫓는구나. 만난 사람 하나하나가 전부 하나의 기업이고, entrepreneur였고, 철학이 있었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배우겠지.
Core
수업 중 하나, Challenge Lab: Opportunity Tech and Future of Work
숨쉴 틈 없이 재밌고 신기하기만 했던 교환학생 라이프의 honey moon period가 끝났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Challenge Lab 수업에서 인스트럭터가 CEO 인터뷰를 잡아줘서, 학생 당 최소 2번의 인터뷰를 하게 됐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감을 잡고, 좋은 이야기 듣고, 2번째 인터뷰를 하게 됐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출신의 Non-profit Organization을 운영 중인 CEO였다. 저소득 국가에 백신을 보급하고, 최저 생계 수준을 개선하는 미션을 가진 회사였다.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참으로 충격적인 대답이 몇 개 있었다.
샌프란의 명물 Salesforce Tower
나는 ’기업가로서의 여정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와 거기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 분은 자신의 본능을 처음부터 강하게 믿지 않은 것이라고 답했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야 했다는 것을 배웠다고 답했다. 그냥 그게 필요하고, 하고 싶다면 굳게 믿고 남의 말을 듣지 말라고 말했다. 지금 학생들에게 조언해주고 있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조언들, 남들한테 듣는 조언들 다 쓸모 없고 니 마음을 따라가라 그랬다. (Advice is a BS라고 했었는데)
또 다른 질문은 데이터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영역에서 어떻게 데이터 중심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가, 대체 데이터를 어떻게 구축했는가였다. 누구보다 데이터 중심으로 사고하고, 데이터를 기반해서 결정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강한 믿음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미션, 비전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는 강한 믿음으로 그냥 시작했고, 전혀 data-driven하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이후에 데이터를 구축하는 과정은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답했다.
이 인터뷰에서 나는 열정과 현실의 간극을 자신의 믿음으로 채운 한 기업가의 모습을 봤다. 나의 중심을 찾아야겠다고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여기 아마 나도 있을걸…?
열정은 넘치지만 이 곳의 현실은 꽤나 차갑다. 여전히 95%의 스타트업은 펀딩을 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엑셀레이팅 프로그램인 Y Combinator는 1.5%의 합격률을 자랑한다. 이는 스탠포드, 하버드, 버클리의 입학률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렇게 어려운 확률을 뚫고 들어가도, YC 기업들의 성공(M&A or IPO) 확률은 40%가 채 안된다. 그러나 다들 웃고 있다. 과정을 즐기는 자들의 진정한 모습들이 아닐까. 결국 그들도 각자의 고민은 있겠지만 언제나 긍정적이다.
기회의 산실에서 나의 중심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제 시작된게 아닐까 한다. 재밌다 여전히. 매일이 새로운 즐거움이다. 교환학생 오길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