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이타주의와 FTX - <고잉 인피니트>

Published

December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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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쇼트>, <라이어스 포커>를 통해 월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작가 마이클 루이스가 FTX 파산의 전말에 관해 정리한 글이다. 상당히 짧은 시간 내에 취재가 이루어졌을 텐데, 무엇보다 읽다보면 도체 기록이라는 것이 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의문스러운 상황에서도 전후사정을 잘 조합해서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책을 펴냈다.

요즘 좀 읽기 뻑뻑한 글을 많이 읽었었는데, 등장인물이 좀 많고 재미 외에 마땅히 얻어갈 것이 있는가 하는 의심을 제외하고는 즐겁게 읽었다. 그리고 책은 언제나 무언가 생각할 거리랑 감상을 남기기 마련이니 나름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이야기는 피터 싱어의 효율적 이타주의로 시작한다. 공리주의에 기반한 사상인데, 내가 책 전반에서 느끼는 효율적 이타주의에 대한 감상은 인류의 공리 극대화를 위한 철저한 수리적 판단에 기초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집단으로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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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께름직하게 느낀 지점은 ’뛰어난 우리가 인류의 공리 극대화를 위해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헌신한다’라는 부분에서 많은 가치를 느끼고 있지 않은가하는 의문이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공동체 내에서는 이에 대한 최소한의 자각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무수한 가치판단이 수반되는 영역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공동 선과 efficient frontier를 찾아내서 온 인생을 바쳐서 헌신하는 모습에서 그들이 가져갈만한 부분은 묘하게도 선민의식과 닿아있다.

나는 근본적으로 이 사건은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머리가 똑똑한 천재가 타인의 조언을 깡그리 무시하고, 사회에 영향력이 매우 큰 의사결정을 반복적으로 내리면서 벌어진 사건에 가깝다고 본다.

유난히 선민의식과 닿아있는 효율적 이타주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무언가 빈 자리를 채워줬고, 무수한 가치판단이 수반되는 영역에서 타인의 행복을 일방적으로 재단했다. 그렇게 사고가 터졌다.

(더 풀어 써야 하는 감상이지만, 이 글에서 주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은 아닌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사람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치판단 기준’ 중에 하나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부분이라 구태여 말을 얹고 싶지 않기도 하다)

Q. 모든 상황을 종합하여 고객 자금을 알라메다의 대출을 상환하는데 쓰기로 결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A. 샘이 제게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알라메다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면 당장 파산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객 자금을 사용한다면 적어도 어떻게든 상황을 바로잡을기회가 있고 샘이 대출금을 갚을 돈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Q. 당시에 본인이 하려는 일이 그릇된 것인지에 대해 어떤 생각이들었습니까?

A.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피고와 일하는 중에 그가 거짓과 절도에 관한 윤리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까?

A. 네. 샘은 자신이 공리주의자라고 했는데, 공리주의에서 거짓말하지 않고 훔치지 않는다는 등의 규칙을 정당화하는 방식이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효용을 극대화하여 최대 다수가 최대 행복을 누리는 것이 유일하게 중요한 도덕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피고와 일하는 동안 피고가 위험 부담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 설명한 적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A. 자신은 진정으로 위험 중립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 회피적이어서 위험을 질 필요가 없다면 그렇게 하지 않거나 위험을 피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자신은 EV가 양으로 판단되는 한 기꺼이 위험을 진다고 말했습니다.

Q 양의 EV가 무엇입니까?

A. EV는 기댓값 (expected value)을 의미하며 매매할 때 자주 쓰는 용어입니다. 양의 EV는 투자액을 전부 날리거나 상당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꽤 존재하더라도 큰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큰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Q. 피고가 위험 부담에 대한 자신의 접근법을 예를 들어 설명한 적이 있습니까?

A. 네. 그는 뒷면이 나오면 1000만 달러를 잃지만 앞면이 나오면 1000만 달러보다 약간 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 동전 던지기처럼 큰 위험을 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Q. 동전 던지기에 관한 다른 예도 들었습니까?

A. 네. 세계를 위한 선에 대해 고민하는 맥락에서 동전 던지기를 언급했습니다. 뒷면이 나오면 세계가 멸망하지만 앞면이 나오면 선이 두 배로 증가한다면 동전을 기꺼이 던지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담으로 피터 싱어는 다른 의미로 내가 알고 있던 철학자였는데… 2021학년도 6월 모의평가 생활과 윤리에서 문제에 대한 이의가 제기됐는데, ’그거 그런 뜻 아닌데’를 시전한 사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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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기존의 관념 전체를 거부하고 완전히 재설계하는 습관을 가졌다. 이 가치에 기초해서 FTX가 세워졌고, 마침 사업 영역은 탈중앙화로 인해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암호화폐였다. 덕분에 수많은 시행착오로 만들어진 많은 금융산업의 무수한 안전장치가 작동은 커녕 존재하지도 않았다.

많은 암호화폐 사건사고는 두 분류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1. 철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거나
  2. 역사의 교훈으로 인해 금융업계에서는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아 벌어진 사고

FTX 파산 사건은 2번의 사건임에는 당연하고, 1번의 관점에서는 효율적 이타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기존의 사기꾼과는 전혀 다른 가치체계가 작동했다는 점에서 참 특이하다. 샘은 돈을 진짜 많이 벌려고 했는데, (대부분의 사기꾼의 목적인) 개인의 부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세상을 위해서 내가 이 정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해서 움직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재판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사실에 대해 이미 양측이 합의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가령 양측은 알라메다 리서치가 일일 매매 활동에서 꾸준히 이익을 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FTX가 2019년 약 2000만 달러에서 2021년에 약 10억 달러로 영업수익이 증가하는 등 실체가 있던 기업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아울러 FTX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 자체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없었으며, 그런 이유로 고객의 예탁금을 알라메다 리서치가 관리하는 은행 계좌로 보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매매업체를 비롯한 고객들이 FTX가 자금을 엉뚱한 곳으로 보낸 것에 대해 왜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다). 알라메다 리서치가 FTX에서 자금을 사실상 무제한 빌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두 가지 토대를 바탕으로 FTX 고객이 거래소에 맡긴 150억 달러 약 20조 원의 대부분이 샘의 개인 매매회사로 흘러간 것이다. 또한 양측은 고객 예탁금과 샘의 돈이 꽤 오랫동안 뒤섞여 있었음에도 FIX와 알라메다 리서치의 경영진이 이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어겼다는 점에도 공감한 듯했다. 알라메다 리서치는 대부분의 존속 기간에 FTX의 자금 유출에 대응하기에 충분한 유동자산을 확보하고 있었다. 즉, 모든 예탁자들이 한 번에 몰려와서 돈을 돌려달라고 요청하더라도 요구에 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양측은 2022년 6월 중순에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에도 동의했다. 한달간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자 시장은 공포감에 휩싸였고 알라메다 리서치는 큰 손실을 입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샘이 푼돈을주고 사들였던 암호화폐 토큰(솔라나, 세럼, FIT)의 막대한 미실현 이익이 손실로 돌아섰다. 이런 가운데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규제 밖에 있던 (제네시스 등의) ’은행’에 암호화폐를 맡겼던 투자자들이 자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앞서 암호화폐 은행은 100억 달러가량의 고객 자금을 알라메다 리서치에 대출하면서 샘이 보유한 토큰을 담보로 제공받았다. 6월 중순에 은행들은 알라메다에 대출금 상환을 요구했다. 당시 샘은 대출금의 상당 부분을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AI 기업 앤스로픽, 비트코인 채굴 회사, 카다시안 일가가 소유한 주류 회사, 수백 곳의 비상장사와 같은 기상천외한 자산에 투자한 터였다. 이러한 자산의 한 가지 공통점은 빠르게 매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알라메다 리서치는 암호화폐 대출 기관에 상환할 돈이 없자 FTX 고객의 자금을 동원했다.

회사는 2019년에 FTX 고객 예탁금을 알라메다 리서치 내부에 보관하기 시작하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 시작했다. 그 고객 예탁금을 위험에 노출시키기까지하면서 선을 한참 넘고 말았다. 2022년 6월 말에 FIX 고객이 모두 몰려와서 예탁금 인출을 요구했다면 FIX는 돈을 되돌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80억 달러가량의 예탁금이 샘의 개인 투자처나 알라메다 리서치의 다른 매매에 묶여 있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샘 뱅크먼프리드는 수익성이 좋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수익성 있는 개인 투자 회사와 엮어서 중간 규모의 은행으로 탈바꿈시킨 셈이었다. 샘의 은행에는 몇 가지 기이한 특징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은행이 매입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면서도 전혀 규제를 받지 않았다. 통상 고객에게 제공되는 예금 보호나 기타 보호 장치도 없었다. 게다가 돈을 맡긴 사람들은 배후에 이러한 은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직접 샘 뱅크먼프리드를 만나 보면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토록 많은 최고의 전문 투자자와 트레이더가 그에게 수십억 달러를 맡겼을 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반면 증언석의 샘 뱅크먼프리드는 정말이지 믿음이 안 가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배심원들은 대체 어떤 멍청이가 그에게 약간의 암호화폐라도 맡겼는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나중에 카플란 판사는 “그는 명백한 거짓말을 하지 않을 때는 얼버무리고 꼬투리를 잡고 질문을 회피하기 일쑤였다. 또한 검사들이 질문을 하면 사실을 대답하지 않고 덜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답변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질문을 바꿔서 묻도록 유도했다. 이 일을 30년 가까이 했지만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라고 말했다

샘이 저지른 짓을 가장 친절하게 해석하더라도 약 110억 달러의 타인 자금을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위험에 노출시켰으며 87억 달러의 고객 예탁금이 증발한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판사는FTX 고객들이 자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어떠한 증거도 채택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배심원이 유죄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샘의 사건에서 유일하게 미결 상태로 남아있던 것은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요점은 샘이 법을 어겼으며 상당한 고통을 유발했고 뉘우치는 기색이 없으며 심지어 위증을 했다는것이었다. 판사는 샘의 동기가 돈을 노리는 일반적인 동기와 다르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매우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라고 말했다. 선고를 하기에 앞서 판사는 잠시 사건이 발생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짚었다. 판사는 캐럴라인 엘리슨의 증언을 들으면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면서 캐럴라인의 증언 속기록을 낭독했다

판사는 “즉 피고가 지구상의 생명체와 문명의 존속이 달려 있더라도 재앙을 모면할 확률이 미세하게 높을 뿐인 동전 던지기를 기꺼이 할 사람이라는 것이 이 사건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다. 그에게는 게임일뿐인 동전 던지기는 제인 스트리트 시절부터 시작되어 최후의 순간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게임을 즐기는 것이 그의 본성이다”라고 말했다. 무모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샘의 본성이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가 이전에 했던 것과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리라는 것이 판사의 결론이었다. 판사는 “이 사람은 미래에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할 위치에 설 위험이 있으며, 그것은 결코 사소한 위험이라고 할 수없다”라면서 ”따라서 선고에는 일정 부분 그를 무력화하기 위한 목적이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석방 없는 징역 25년형을 선고했다

이 책 어디선가 시장에서 폭로되기 전에 누구도 샘의 범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이상한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물론 FTX와 알라메다 리서치의 관계가 수상해 보였다고 말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매 순간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그런 의혹이 비일비재하다. “샘이 고객 예탁금을 개인 매매회사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범죄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범죄를 예방하고 FTX를 존속시킬 수 있었던 많은 방법이 있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다.

샘 뱅크먼프리드가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전하는 것일 뿐이다. 이 책을 쓰는 대부분의 순간에 나는 “금융 시스템을 활보하는 범죄자”보다는 “지식으로 무장했지만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도덕률에 따라 살다가 크나큰 실수를 저지른 청년”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샘에게 그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처음에는 그의 부모가, 나중에는 제인 스트리트가 그랬다. 샘은 그러한 기대에 따라 행동했다. 문제는 그가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더 복잡해졌다. 샘은 세상과 줄곧 특이한 방식으로 소통했고, 그러한 소통이 생소하기는 하지만 귀중한 교훈을 던져주는 경우도 많다. 샘의 소통은 오늘날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를 알려준다. 또 한편으로는 타인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상대방을 얼마든지 위험에 노출시키는 샘의 가장 불안한 특징을 보여준다. 고객 예탁금으로 얼마든지 도박을 감행하는 모습에서 그러한 면모가 단적으로 드러났다. 물론 그의 연애와 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샘은 캐럴라인 엘리슨과 어울렸고 제인 킷을 잘못 이끌도록 만들었다

아울러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멸절시킬 가능성이 있는 동전 던지기를 시도하는 것이 똑똑한 일이라고 믿도록 만들었다

샘의 범죄는 그의 성품을 이루는 하나의 조각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절도자의 됨됨이가 아니라 위험에 무감각한 사람의 됨됨이였다. 그 자신은 위험을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노출된 위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샘은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한 위험 감각의 부재는 특정 환경에서는 쉽사리 마음을 빼앗기고 주의력이 분산되는 취약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또 다른 환경에서는 사회의 위험 분자로 보이게 만들었다.

설사 내 생각이 옳더라도 범죄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도 던져서는 안 되는 동전이 분명 존재하므로


마이클 루이스는 자신을 스토리텔러로 정의하고 있는 듯 했다. 사실 관계의 조합과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저자의 의도로부터 완전한 중립을 달성할 수는 없지만, 마이클 루이스는 독자의 판단 영역을 남겨두는 선에서 사실관계를 조합해서 몰입감 높은 스토리를 쓴다는 점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잘 수행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잘 쓰인 책이다.

처음에 샘 뱅크먼프리드의 행적을 쫓기 시작했을 때에는 그 끝이 어디에 가닿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재정적인 파국을 바로 옆에서 관찰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다. 이 사건에 대한 이론은 고사하고 나름의 관점이나 입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샘이라는 인물과 그가 처한 특이한 상황에 호기심이 일었을 뿐이었다.

친구가 없었던 소년은 우정이라는 기술을 연마할 틈도 없이 어느 순간 너무나 많은 친구를 거느린 어른이 되어 버렸다. 이 가운데 어떤 이야깃거리가 있을지, 그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지명 확하게 떠오르는 바가 없었지만 일단 샘 뱅크먼프리드의 삶 속에 발을 담그고 나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고 이야기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책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어느 편에서도 사건에 대한 온전하고 종합적인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서로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는 부분을 발췌하여 왜곡하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던 부분은 사실상 독자들을 배심원석에 앉힐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서술 논픽션에 적용되는 증거 기준은 연방 형사 재판보다 느슨하다. 이야기에는 배심원들이 절대 접할 수 없고, 법적 판단에는 아닐지라도 폭넓은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세세한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어찌 됐든 사건을 보다 종합적으로 설명하면 독자가 간단하게 ‘유죄’ 혹은 ’무죄’로 단정하는 대신 촘촘한 평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독자가 동일한 평결에 도달할 것을 기대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야기의 묘미는 읽는 이들이 제각각 다른 결론에 이르는데 있다. 이 사건은 양자택일의 결정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복잡했다

재판은 샘 뱅크먼프리드가 든 상자를 선반 위에 ’사기’라고 표시된 같은 모양의 상자 옆에 놓아 누구도 그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보이지않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내게 샘은 재판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홍미로운 인물이다. 평범한 상자에 구겨 넣기에는 샘의 사건에 복잡하게 얽힌 요소가 너무나 많다.

그가 대형 사기를 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었음을 알고 있었다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미국 금융 규제 당국에 암호화폐를 규제해야 한다고 설득한 이유가 무엇인가? 샘이 회사의 부정행위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은 금융 규제 당국의 규제를 굳이 받으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회사가 불안정한 토대 위에서 운영되고 있음을 알았다면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CZ*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노력을 왜 기울였을까? 샘과 캐럴라인이 FTX 고객의 요청에 응할 자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걱정했다면 회사에 얼마의자금이, 심지어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 CZ*: Changpeng Zhao,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Binance의 창업자

샘은 왜 자신만의 비밀 계정에 돈을 숨겨두지 않았을까? 수상한 다른 암호화폐 거물들처럼 두바이로 도망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그가 법정에서 받은 처분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이 그에게 덧입히려는 단순한 그림을 복잡하게 만드는 방해물일 뿐이었다

샘 뱅크먼프리드의 제국이 무너진 시점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분노를 쏟아냈고, 어떤 이들은 이를 기회 삼아 대중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경험에 따르면 샘 뱅크먼프리드에게 공공연하게 분노를 표출한 많은 사람들 역시 비난받을 여지가 많은 사람들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소유주, 광풍에 휩쓸리는 금융인,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수상한 암호화폐 기자들이 그들이다.

나의 개인적인 견해가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글감을 직접 선택하며 무엇이 사실이며 무엇이 사실이 아닌지, 무엇이 흥미롭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무엇이 이야기에 중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독자들을 모종의 결론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야기에 독자가 거닐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어서 독자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품고 책장을 덮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처음부터 나는 이야기가 제 길을 찾고 사실을 전달한다면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공감하리라 생각했다. 이미 수백만 명의 암호화폐 투자자들과 수백 명의 벤처 캐피털 심사역, 수십 명의 유력한 정치인들, 여러 명의 거물들이 샘에게 공감한 바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다룬 많은 내용은 사실 FTX 창립자들뿐 아니라 규제 당국, 벤처 캐피털 심사역, 암호화폐 시장의 문화, 꼼꼼하게 질문을 해보지도 않고 뭉칫돈을 들고 삽시간에 몰려온 세상 사람들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나면 많은 아이러니함이 남는다. 필력이 부족해서 차마 이것저것 떠오르는 고민들을 쭉 써내려갈 수가 없는데, 무엇하나 명쾌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FTX는 굉장히 복잡한 사안이고, 따로 성문화 해본적 없던 도덕률이라던가, 원칙 등에 대해서 글로 서술하면 이도저도 아닌 이야기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 부분은 혹시라도 이 책이 관심있어 읽게되실 분들의 몫으로 남기는게 맞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