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어마어마한 책을 만났다. 인생 책 중 하나가 되버렸다. 책의 흡입력부터 남달랐고, 다 읽고 난 뒤에도 여운이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책이다. (번역서 읽었는데 다 좋았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597791
팩트풀니스(한스 로슬링, 김영사)
팩트풀니스Factfulness ’사실충실성’이란 의미. 이 책에서 처음 소개하는 말로, 팩트(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습관을 뜻한다.
처음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건 직장 상사 덕분인데, 그 분은 평소에도 이것저것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잘 꺼내시는 분이다. 이 번에 꺼낸 이야기도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세계 남자들은 평균 10년동안 학교를 다닌다는데, 여자들은 얼마나 다닐거 같애? 9년, 6년, 3년 중에 골라봐.
내가 알기론 그 햇수가 짧은건 당연했고, 얼마나 짧은지 골라야했다. 그래도 꽤나 교육받는 시대가 됐으니 6년을 골랐는데 직장 상사가 틀렸단다. 9년이 정답이라고 말하면서, 이 책과 저자 ’한스 로슬링’의 이야기를 조금 했다.
저자 한스 로슬링은 전 세계를 다니며 강의를 통해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편견’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그의 꿈은 ’칼 삼키는 묘기’었고, 강의가 끝날 때 퍼포먼스로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자유로운 사고’와 ’파격적인 행동’을 할 때, 그 인간 자체에 매우 관심이 간다. 그럴만한 이유도 있을거고, 일단 그냥 너무 궁금하다.)
이 날 퇴근하고, 그의 TED 강의를 한 편 봤는데, 그야말로 매료됐다. 투박한 발음으로 청중을 들었다 놨다하며 유쾌하게 진행하는 솜씨하며, 내용도 범상치 않았다.
저 막대기부터 범상치 않다. (출처 - TED Youtube ’How not to be ignorant about the world | Hans and Ola Rosling)
그렇게 뭔가에 홀린듯 책을 샀고, 3일만에 읽었던 것 같다. 책 읽는 내내 몰입감은 고조됐고, 저자의 따뜻한 마음이, 진심이 너무 잘 다가왔다. 뭉클하면서도 머리 속을 헤집는 ’사실충실성Factfulness’의 폭풍은 복잡한 여운을 남겼다.
이 책은 뭐라 한 문장으로 압축하기 힘든 분위기를 담고있다. 편향과 오판을 피하기 위한 데이터 기반의 사고방식을 제안하면서도, 세상이 얼마나 발전했는지에 사람들이 감사하고 기뻐하길 바라며, 사실충실성에 기반한 사고를 하지 못하는, 하지 않는 세상을 탓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모르고 있었을 뿐이라고, 잘못 배웠을 뿐이라고, 자신이 최선을 다해 세계의 ’체계적 편향’과 싸워온 기록을 써내려온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 논리에 기반한 사고를 정말 좋아한다. 보통 흔들리지 않는 논리는 과학과 수학에 기초하고 있으며, 데이터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 경험상 진리를 놓고 토론하지 않는 이상 반박하지 못하는 건 지식이 부족해서, 쌓아올린 사색이 부족해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 늘 데이터 기반의 사고를 하고 싶었지만, 지식이 부족하다 생각했고, 뭔가 엉성한 느낌이었다.
내 사고를, 내 논리를 어떻게 개선해야 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고, 읽으면 읽을 수록 사실충실성에 기반한 사고를 너무 하고 싶었다. 당장 인생을 이렇게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사실충실성을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드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책 말미에서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제 결정을 내릴 시간이다.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본능이 지금처럼 절실히 느껴지는 일은 다시없을 것이다. 오늘, 바로 지금이 이 책의 통찰력을 받아들여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꿀 절호의 기회다. 아니면 책을 다 읽은 뒤 “거참, 희한하군”이라고 중얼거리곤 이전과 똑같이 행동하거나.지금 결정해야 하고, 지금 행동해야 한다. 생각하는 방식을 오늘부터 바꾸겠는가, 아니면 영원히 무지한 상태로 살겠는가? 그건 마음먹기 달렸다.(중략)하지만 침착하라. 그건 대개 사실이 아니다. 절대 그렇게 다급하지 않고, 절대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다. 이 책을 덮고 다른 것을 해도 좋다. 일주일 뒤나 한달 뒤, 아니면 1년 뒤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요점을 상기할 수도 있다.
책 읽는 내내 진심으로 저자처럼 사실충실성에 기반해 사고하고 싶었다.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이 뭔가 잘못된 것 같으면서도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우 고양됐었다. 그러면서도 으레 그래왔듯, 엄청난 인생 책을 읽고 결심했던 바를 다 하지 못했던 기억, 10가지나 되는 사고법에 압도되어 마음 속으로 압박감을 느꼈다. 이대로 살지 못하면, 잘못된 삶을 살아갈 것만 같은 죄책감. 하지만 한 순간에 저자는 이런 내 마음을 휘어잡았다.
이 책을 덮고 다른 것을 해도 좋다.
평생을 바쳐 세상의 체계적 편견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이, 유작으로 남긴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게 됐다. 심지어 해당 챕터의 시작은 저자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실수를 고백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가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하며 썼는지, 세상을 위해 본인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가 ’Factfulness’를 잠시 내려놔도 된다고 말했다.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폭풍이 밀려왔다. 그가 얼마나 뜨겁게 세상을 사랑했는지, 자신은 떠나지만 사람들이 잘 할 것이라 얼마나 굳게 믿고 있는지, 그의 단단한 믿음이 책에 녹아있었다.
그의 말처럼 세상의 변화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서히 일어나며, 심지어 대부분 드러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럴 것이다. 사실충실성에 기반한 사고를 하려는 노력은 그리고 그 결과는 내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일어났던 모든 변화에 감사하며, 더 나아지기 위한 Facfulness, 사실충실성 추구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이 책에 다시 한 번 정말 크게 감사한다.
책에서 지적한 10가지 인지편향을 유발하는 본능과 각 본능별 인용구를 몇개 뽑았다.
1. 간극 본능
최악인 첫 번째 오해는 세상을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라는 2개의 엉터리 상자에 나눠 담음으로써 사람들 머릿속에서 세상의 모든 비율을 완전히 왜곡해버린다.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땅에 가까운 자그마한 건물들의 높이 차이를 제대로 식별하기 어렵다. 모두 작게 보일 뿐이다.
2. 부정 본능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좋지 않은 일에 대한 소식은 듣기는 쉽다. 하지만 좋은 일을 알기란 어렵다. 무수히 많은 것이 개선되고 있지만, 결코 보도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긍정적 변화는 훨씬 흔하지만 그 소식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라. 우리가 직접 찾아봐야 한다(통계를 보면 그런 소식은 차고 넘친다).
3. 직선 본능
무언가가 계속 2배로 늘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빨리 많아진다.
오늘날 삶에서 직선적 직관이 늘 믿을 만한 안내자 노릇을 하는 건 아니다.
4. 공포 본능
’위험한 세계’라는 이미지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효과적으로 방송을 타지만, 실제 세계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덜 폭력적이고 더 안전하다.
뇌를 식히고 수치를 비교하면서 우리 자원이 미래의 고통을 멈추는 데 효과적으로 쓰이는지 점검해야 한다.
5. 크기 본능
수치 없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으며, 수치만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다.
크기 본능은 우리의 제한된 관심과 자원을 개별 사례나 눈에 보이는 피해자, 또는 우리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것에 쏟게 만든다.
6. 일반화 본능
많은 사람이 인정한 문제 있는 일반화를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어느 집단의 ’다수’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다는 말은 마치 그 집단 대부분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다수는 단지 절반이 넘는다는 뜻이다. 51%일 수도 있고, 99%일 수도 있다.
7. 운명 본능
어떤 대상을 불변의 것으로 보는 이런 본능, 지식을 업데이트하지 않는 이런 본능이 오늘날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의 모든 혁신적 변화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사회와 문화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사소하고 더뎌 보이는 변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축적된다.
8. 단일 관점 본능
우리는 단순한 생각에 크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통찰력의 순간을 즐기고, 무언가를 정말로 이해한다거나 안다는 느낌을 즐긴다.
여러 의견을 받아들일 시간이 없다면? 엉터리 의견을 많이 갖고 있기보다 옳은 의견을 몇개 갖고 있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9. 비난 본능
비난 대상에 집착하느라 정말 주목해야 할 곳에 주목하지 못한다.
나쁜 사람을 찾아내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거의 항상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여러 원인이 얽힌 시스템이 문제일 때가 대부분이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10. 다급함 본능
두려움에 다급함이 더해지면 어리석고 극적인 결정을 내려,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생긴다.
절대 그렇게 다급하지 않고, 절대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다.
두려움과 다급함이 아닌, 데이터와 냉철한 분석에서 나온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말하는 데 쏟는 힘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쏟아야 한다.
이 책의 서두에 나오는 사실을 묻는 질문 13가지다. 한 번 본인의 지식을 테스트 해보길 권장한다.
-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 A. 20% B. 40% C. 60%
- 세계 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
- A. 저소득 국가 B. 중간 소득 국가 C. 고소득 국가
-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 A. 거의 2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 오늘날 세계 기대 수명은 몇 세일까?
- A. 50세 B. 60세 C. 70세
- 오늘날 세계 인구 중 0~15세 아동은 20억이다. 유엔이 예상하는 2100년의 이 수치는 몇일까?
- A. 40억 B. 30억 C. 20억
- 유엔은 2100년까지 세계 인구가 40억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주로 어떤 인구층이 늘어날까?
- A. 아동인구(15세 미만) B. 성인 인구(15~74세) C. 노인 인구(75세 이상)
- 지난 100년간 연간 자연재해 사망자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 A. 2배 이상 늘었다. B. 거의 같다 C. 절반 이하로 줄었다.
- 오늘날 세계 인구는 약 70억이다. 아래 지도 중 이 70억의 거주 분포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은?
- A. 아시아 4 / 유럽 1 / 아프리카 1 / 아메리카 1
- B. 아시아 3 / 유럽 1 / 아프리카 2 / 아메리카 1
- C. 아시아 3 / 유럽 1 / 아프리카 1 / 아메리카 2
- 오늘날 전 세계 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을 몇 퍼센트일까?
- A. 20% B. 50% C. 80%
- 전 세계 30세 남성은 평균 10년간 학교를 다닌다. 같은 나이의 여성은 평균 몇 년간 학교를 다닐까?
- A. 9년 B. 6년 C. 3년
- 1996년 호랑이, 대왕판다, 검은코뿔소가 모두 멸종위기종에 등록되었다. 이 셋 중 몇 종이 오늘날 더 위급한 단계의 멸종위기종이 되었을까?
- A. 2종 B. 1종 C. 없다
-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 A. 20% B. 50% C. 80%
- 세계 기후 전문가들은 앞으로 100년 동안의 평균기온 변화를 어떻게 예상할까?
- A. 더 더워질 거라고 예상한다. B. 그대로일 거라고 예상한다. C. 더 추워질 거라고 예상한다.
답:
- 1:C / 2: B / 3: C / 4: C / 5: C / 6: B / 7: C/ 8: A / 9: C / 10: A / 11: C / 12: C / 13: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