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마지막 습관> review - Introduction

Philosophy
Published

January 8, 2022

나는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은 자다. 어렸을 때 과거가 좋게 보여서 과거 공부에 빠져 지낸 세월이 10년이었다. 마침내 처지가 바뀌어 조정에 나아가 검은 사모에 비단 도포를 입고 미친 듯이 큰길을 뛰어다닌 세월이 12년이었다. 또 처지가 바뀌어 한강을 건너고 조령을 넘어, 친척과 분묘를 버리고 곧바로 아득한 바닷가의 대나무 숲에 달려와서야 멈추게 되엇다. 이때는 나도 땀이 흐르고 두려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나의 발꿈치를 따라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에 끌려서 온 것인가? 아니면 해신이 부른 것인가? 자네의 가정과 고향이 모두 초천에 있는데, 어찌 본고장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물었다. 끝끝내 나라는 것은 멍한 채로 움직이지 않으며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얼굴빛을 보니 얽매인 곳이 있어서 돌아가고자 하나 가지 못하는 듯했다. 마침내 붙잡아서 함께 이 곳에 머물렀다.

다산이 20년간 조정에 헌신하고 버려지듯 내려온 귀양지에서 다산은 자신을 찾았다. 오히려 지난 20년을 세속에 빠져 살아 자신을 잃은 기간이라 말하며, 몸도 마음도 성치않은 기간동안 자신을 찾아냈다. 자신의 삶이 학문에 있고, 집필이라는 습관을 통해 매일 수신해간 결과 다산은 자신만의 경지에 올라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자신을 찾아냈다.

처음엔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한장한장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곱씹으면서 읽는 책이 됐다. 뒤집기처럼 그저 고난 속에서 나를 찾는 결과물이 피어오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수신을 근간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숙제지만, 평생동안 노력하지 않으면, 그 노력을 중간에 포기한다면 의미조차 없는 ’수신’에 그 답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이런 책을 봤다면 꽤 추상적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도 실천에 도움되지 않는다 했을 것이다. 지금은 이런 말이 나오게된 문맥에는 ’인간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아는 것이 없고, 쉽게 얻은 답은 쉽게 얻은 값어치 밖에 안된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참스승은 답을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방향만 점지하는 분들이라는 것. 그 분들은 고민의 가치를 알고, 스스로의 고민에서 나온 답이 아니면 그 어떤 답을 쥐어줘도 그 손을 떠날 것을 아는 분들이다. 아마, 내가 스스로 답을 찾고 싶어 이 책을 그렇게 집중해서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맹자는 ’하늘이 장차 그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할 때는 하고자 하는 일을 어긋나게 함으로써 그가 더 큰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고난의 의미를 설파했다. (…) 고난을 통해 잃어버렸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수신의 힘이다.

미국 교환학생이라는 엄청난 환경의 변화를 앞두고, 그저 그 변화를 두려워만 했던 기간이 있었고, 나의 실력 부족을 두려워한 기간이 있었고, 한국에서 여전히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해야 했다는 것에 슬프기도 했다. 멍한 순간에도 그냥 이 책을 계속 읽고 싶었다. 비행기에서도 읽었다.

나한테 적어도 이 교환학생은 시련에 가깝다. 어떤 행동으로 그 시간을 채워도 아쉬울 것이며, 어떤 식으로 노력해도 시간의 한계와 능력의 한계로 할 수 없는 일과 실패가 등장할 것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는 노력도 덤이다.

어떤 뜻을 품고 여기 왔는지 아직 모르겠으나,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중심이 되는 나를 바로잡으려고 한다. 바로잡는 일 중 하나로 이 책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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