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김범수 의장 2011년 인터뷰

Published

January 4, 2025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110171434320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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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가 중학생때 아버지가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작은 집을 장만하기도 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났다. 그래서 재수를 할 때는 혈서까지 쓰면서 독하게 공부했다. “집안 사정을 생각하니까 보통의 노력으로는 안될 것 같았어요. 마음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 베서 혈서를 썼죠. 3번을요. 담배 끊으려고 ‘까치담배(낱개로 파는 담배)’ 3개비를 사다 책상에 올려놓고 진짜 힘들 때만 피자고 했죠. 1년 후에 2개비가 남았더라고요.”

눈물 젖은 라면 먹으며 학비를 벌었으면 공부도 독하게 했을 법 한데 김범수의 대학생활은 정반대였다. “재수 1년을 워낙 힘들게 해서 그랬는지, 보상 심리랄까,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에 푹 빠졌어요. 교수할 것도 아니고, 서울대 졸업하고 취직 못할 것도 아니고, 이왕 놀 거면 도둑질 빼고는 다 해보자 싶었죠.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런 숱한 경험들이 버려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시작하는 게 첫걸음인 것 같아요. 한게임 만들 때도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게 뭐지’하다 보니 ’내가 잘하는 게임과 잡기, 이런 걸 온라인으로 옮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밤새워 놀았던 경험들이 온라인에서도 되겠다 싶었죠.”

김범수가 ’연결된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거 돈 되겠네’가 아니었다. ’이게 뭐야, 대체’였다. “대학원 시절 BBS(전자게시판시스템, PC통신의 초기형태) 사업쪽으로 창업한 후배 사무실에 갔는데, 이게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제가 모르던 세상이 존재하더라고요. ‘직접 만나서 떠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채팅을 한다? 이게 뭐야, 대체’ 싶었죠. 연결된 세상에 대한 첫경험이었죠. 너무너무 신기했어요. 3개월을 후배 사무실에서 합숙하면서 배웠죠. 졸업하고 컴퓨터 원 없이 쓸 수 있는 회사에 취직하겠다고 결심했죠.”

“영화 ‘올드보이’를 보면 15년을 가두잖아요. 최민식이 ’어떤 놈이 대체 날 가뒀나’ 고민하고 관객들도 그 느낌을 쫓아가죠. 하나씩 비밀이 풀어지니까 ‘저래서 가뒀구나’ 하죠. 그런데 영화가 끝나나 싶었는데 유지태가 딱 한마디합니다. ’당신이 틀린 질문을 하니까 틀린 답만 찾을 수밖에 없다’고. ’왜 가뒀나가 아니라 왜 풀어줬나가 올바른 질문이다’고 말이죠. 거기서 땅 때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범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보다, 문제를 인지하는 능력,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 어마어마하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리더의 능력은 답을 찾아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할 줄 아는 것 같아요. ‘어떤 어떤 문제를 풀어봐’라고 말이죠. ’어떤’ 문제를 풀어보라고 할지가 경쟁력이죠.”

그는 ’관점의 이동’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대부분 인간이 관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데,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보자는 것이죠. 피카소는, 남들이 눈에 보이는 걸 그릴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서 세계 최고가 됐죠.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 이걸 내재화하고 습관화하면 경쟁력이 되는 거죠.”

사건 A가 발생했는데 한발 앞서 사건 B에 주목하는 것, 그리고 질문을 던지는 것, 바로 이것이 남들이 모르는 세상의 비밀 하나를 가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길게도 필요 없어요. 딱 6개월만 앞서 다르게 보고 질문을 던지면 웬만한 건 다 준비할 수 있습니다.”

김범수는 청춘들에게 악착같이 살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일본에선 모바일로 소설을 연재해 500억원 대박을 낸 작가가 있어요. 유명작가가 아니에요. 짧은 문장과 빠른 템포로 모바일에 맞췄던 거죠. 이제 고시공부처럼 과거지식을 쌓는 트레이닝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어요. 글을 쓰고 싶은 친구라면 글쓰기 연습을 하는 동시에, 글쓰기와 패러다임 변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에 대한 스킬을 쌓으면서 동시에 관점을 바꿔 세상을 볼 줄 아는 것, 그 두개가 딱 만나는 선에서 답이 나오는 거 같아요.”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역삼동 카카오 사무실로 찾아가면서 기자는 크게 성공한 김범수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청춘들에게 어마어마한 노력을 강조할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오히려 악착같이 살지 말라고 했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고문하지도 말라고 했다. 대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다. 다만 관점을 이동해볼 것, 문제를 정의할 것을 주문했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놀이를 해도 다르게 생각하는 것, 바로 이것이 김범수의 성공 비결이었다.


몇가지 특기할만한 점이 있는데, 일단 ’서울대 졸업하고 취직 못할 것도 아니고’라는 부분에서 일단 먹고 살 능력 자체는 스스로 갖춰 놔야 이런저런 생각이나 경험도 해볼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마음가짐으로 극복할 수 있는 누군가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임계치가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제단할 수는 없다. 어찌됐건 능력치의 여유가 되었건 마음의 여유가 되었건 미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사실 질문을 하는 능력 그 자체를 갖추는 것에 성장의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김범수 의장의 ’질문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 그 자체가 어찌보면 성장을 해야 하는 누군가에게 ’너는 성장을 하려면 이미 거기 가 있어야 해’라는 모순적인 주문으러 들릴 수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알면 행하면 되는 것이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며, 결국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모르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의 첫 단계에서 갖춰야 할 능력으로 사실상 성장이 추구해야 할 종말점이자 시작점이다. 순환참조로 구성된 고리에서 내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레버리지가 있는 부분을 뚫고 들어가 positive feedback cycle을 돌리는게 성장의 flywheel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라고 늘 생각한다.